본문 바로가기

일상

영국,런던

유럽에서 맞는 첫 날의 아침.

호텔 주변의 주택가를 산책하고 빵과 진한 커피 한 잔으로 간소한 식사를 하고

전용버스를 타고 투어를 시작한다.

 

 호텔 주변의 주택가

 

 

 

런던 거리

 

 

지붕에 굴뚝이 늘어서 있는 진귀한 풍경.

굴뚝이 있는 건물은 100년 이상된 건물로 방마다 굴뚝을 설치하여  굴뚝세를 받았다고..

이후 창문세, 인두세 등등.....

 

 

옆으로 길게 늘어선 아파트. 3km에 이르는 곳도 있으며,

복층구조로 세로층이 한 가구로 되어있다고 한다.

 

 템즈강변의 국회의사당.

세계 최초의 의회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

커다란 시계탑,

빅벤(2012년 여왕즉위식 60주년기념 다이아몬드 주빌리 이후 엘리자베스2세 타워로 불리고 있다고)이 상징.

왼쪽은 국회 법안이 비치되어 있는 빅토리아 타워.

 

 웨스트민스터 사원.

왕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이 치뤄지는 곳.

이혼한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을 치를 것인가 논란이 많았으나 윌리엄 왕자의 어머니 자격으로

장례식을 치뤘다.

왕족과 셰익스피어, 윌리엄 워즈워드, 헨델, 뉴턴 등 시인, 음악가, 예술가, 과학자 등

영국을 빛낸 인물 3천여 명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버킹검 궁.

여왕의 집무실.

 

 여왕이 궁에 있을 때 사자상의 왕실 국기가 걸려있고,

부재 중 일때는 영국 국기가 게양된다고 한다.

 

 건너편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탑.

꼭대기엔 금동의 천사조각.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줄지어 서있는 귀족들.

여자는 모자까지 써야 정장이라고. 모자대신 형형색색의 깃털 장식을 많이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즉위 1년 후 대관식을 하였다고)60주념 기념 깃발이 온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영국의 상징적인 빨간 이층버스와 블랙 캡의 택시. 택시 요금은 30분에 10만원 정도라고...

 

템즈강의 타워브릿지.

영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

대형선박이 지나갈 때 다리의 가운데가 들려진다. 배가 지나가는 동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건너갈 수 있도록 되어있으나 이곳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대영박물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

 

 

의사이자 골동품 수집가였던 개인의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1753년에 설립되었다.

세계각국의 유물을 약탈한 전리품으로 현재 1,300만점으로

온전히 기부금으로 운영되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관계상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그리스관,그리고

2000년 11월 한광호 박사의 후원으로 신설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조선후기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한국관만을 감상하였다. 

 

 

750만평의 하이드 파크 내에 있는 로얄 알버트 경의 동상이 건너편

그가 추진중이던 콘서트홀(로얄 알버트홀)을 바라보고 있다.

 

로얄 알버트 홀.

 

빅토리아 여왕과 로얄 알버트경

 19세기 영국을 64년간 통치하며 황금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

 

18세에 영국의 여왕이 된 빅토리아는 소녀에 불과했다.

이런 여왕에게 제왕의 위엄을 갖추도록 도와준 사람이 당시 수상이었던

'멜번 경' 이었다. 수상은 여왕의 개인 비서를 겸임하면서 군주의 덕목과

위엄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고 여왕 또한 그녀를 아버지처럼 잘 따랐다.

여왕을 도와 대영제국을 이끌었던 또 한 명의 인물이

바로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 이다.

 

앨버트는 독일의 왕자였고, 이들의 결혼식날 여왕이 흰색 옷을 입고 식을 올렸는데

그 이후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는게 전 세계의 트렌드가 되었다 한다.

 

처음 둘의 관계는 별로 였지만 앨버트의 사려 깊음과 진중함에 반해

나중에 사랑하게 되었다 한다.

여왕은 전폭적으로 그의 판단을 믿었고, 항상 국무회의 때 그를 대동했다.

20년 결혼생활 동안 국왕은 빅토리아 였지만 실질 군주는 앨버트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실의 재산관리, 외교문제에도 관여해 분쟁을 막았고, 국제 박람회도 성공적으로 치뤄냈다.

앨버트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국민에게 외면 받았지만 왕실 사람 답지 않은

청교도 적이고 성실한 삶의 태도가 왕실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앨버트는 여왕과 자녀들을 데리고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로 자주 여행을 갔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정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영국적 군주제를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국가적 중대사안은 여왕이 관여하고, 그 외 정치적 문제는 수상의 소관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왕과 앨버트 사이엔 9명의 자녀가 있었고 이 자녀들은 모두 유럽 왕실과 정략 결혼을 했는데

그 결과 오늘날 남아있는 유럽 왕실 대부분이 빅토리아 여왕과 일정 관련을 맺고 있다.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던 앨버트는 여배우와의 스캔들로 여왕과 다투고 학교로 돌아가 버렸다.

몸이 좋지 않은 앨버트는 아들을 설득하러 캠브리지에 찾아갔는데 이 때 얻은 병으로 42세의 젊은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이로인해 여왕은 평생 아들을 원망하고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는다.

여왕은 40년을 홀로 살며 평생 검은 옷을 입고 앨버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다

앨버트는 살아 생전 박람회를 통해 번 수익으로 콘서트홀 짓고 있었다.

여왕이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콘서트홀을 완성해 이 홀의 이름을

로얄 앨버트홀이라고 짓게 된다.

 

그리고 그 홀 맞은편에 거대한 남편의 동상을 만든 후 자신의 꿈이 담긴 콘서트홀을 항상 보게 하여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런던아이.

1999년 새해 첫날 개장. 템즈강변에 우뚝 솟아, 런던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영국은 쉥겐조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유로화를 쓰지 않고 파운드를 쓴다.

최초로 지하철이 생겨났고 빨간 2층버스와 빨간 공중전화부스가 상징적이다.

런던은 1인당 녹지율이 세계 제일로 공원과 박물관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현지식 로스트 비프로 늦은 점심을 먹고, 김밥 도시락을 들고

오후 5시 5분 비행기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1시간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