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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명동성당

         명동 대성당

서울 대교구 주교좌 명동 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

명동성당은 내가 1985년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홍문택신부님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2월11일에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곳.
그리고 그해 6월에 견진성사까지 받았던 곳.

1883년 무렵 김가밀로 회장의 명의로 종현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면서 명동성당 건립은 시작되었다.
당시의 교구장 블랑 주교는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학당을 설립, 운영하였다.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 주교는 1892년 8월 5일 기공식을 갖고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릉 축성하여 고정시켰다.
성당 설계와 공사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으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성당 건축을 마무리하였다.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되어 있다.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성당 명칭이 종현성당에서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가톨릭 회관 앞에서 올려다 본 명동성당


예수상/1987.최종태 작


성당 내부

중앙 제단 열네 사도 초상화/1926.장발 루도비코 작. 열두 사도 외에 사도 바오로와 그의 동행자 바르나바 각 사도는 들고 있는 도구가 다르다.

중앙 제단 위 반원형의 유리화는 빛의 신비를 제외한 묵주기도의 15신비를 나타내고 있다.

닫집. 주교좌 상부 기둥에 설치.

성 베네딕토 상. 블랑 주교는 1889년 풍수지리설로 한국 정부와 토지 분쟁이 일어나자 베네딕토 성인에게 특별한 가호를 청원하며, 일이 잘 해결되어 성당이 걸립되면 성 베네딕토의 제단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여,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 주교는 이 약속을 지켜 성당이 완공된 후 베네딕토 성인의 목조상과 제단을 설치하였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상

파이프 오르간. 파이프 오르간은 1924년 신자들의 모금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이후 1960년 전자식 파이프 오르간으로 교체하였다. 현재의 파이프 오르간은 세 번째로 독일의 보쉬 파이프 오르간 회사에서 제작, 1985년 4월에 설치되었다. 이 오르간의 파이프 개수는 2,600개이다.

십자가의 길/1989. 최종태 작.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지하 성당. 제대

제대 뒤 성해 안치실. 지하 성당 유해실은 성 앵베르 범 주교, 성 샤스탕 정 신부, 성 모방 나 신부를 비롯한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등의 다섯 명의 성인과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그리고 두명의 무명 선교사 등 네 명의 치명자 유해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시성을 위한 순회 기도 시 모셔졌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의 일부도 모셔져 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상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상은 1948년 명동성당 축성 50주년을 맞이하여 성당 뒷마당에 설치하였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마리아상이 총에 맞게 되어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로 옮겨졌다가 전쟁이 끝난 후 재설치되었다.

성당 뒷모습.

성모 동굴. 한국의 평화를 위해 노기남 주교가 기획하여 1960년 8월 27일 봉헌되었다.

 

순교자 성월이기도 하고, 다시금 예원이의 수시와 수능을 앞두고 초조한 마음이 되어 순교자들의 힘을 빌고자 다시 순례를 시작한다. 200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