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일. 6월14일(목) 로마
로마에서의 아침. 쉐라톤 호텔.
라테라노 성 요한 대성당 가는길.
버스에서 바라본 로마성벽(아우렐리안성벽).
길이가 19km나 되고, 높이 10.6m, 14개의 성문이 있는 이 성벽은
271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때 건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그 당시 로마를 거의 감싸는 규모였다고 한다.
쾌청한 날씨와 파~란 하늘. 잘 가꾸어진 초록의 나무들.
아름답고 고풍스런 건물들.
메마르고 경직된 느낌의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건너와
무언가 풍요롭고 여유가 느껴지는 것이
마음이 행복해진다.
자연의 환경이 사람의 감성에 주는 영향력을 느낀다.
라테라노 대성당 앞의 로마성문
* 라테라노 성 요한 대성당
'라테라노의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와 성요한 복음사가 대성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며, 로마의 주교좌 성당이다.
324년. 라테라노의 소유지를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기증한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의 관저로 기증하여,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 그리스도'께 봉헌하였다.
그리고 905년. 교황 세르지오 3세가 성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
교황 루치오 2세가 성 요한 복음사가에게 봉헌하였다.
1307년. 교황 클레멘스 5세때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되기 전까지
약1000년간 교황이 계시던 곳이다.
'전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머리인 지극히 거룩한 라테라노 성당'이라는 뜻
중앙 입구.
대성당 문을 들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함과
정교함과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압도당하는 듯 하다.
성당의 길이는 130m에 이른다고 한다.
천정의 높이를 보라.
그리고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대리석 바닥..
교황좌가 있는 중앙 제단은 '교황의 제단'으로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단 밑에 마르티노 7세 교황의 무덤이 있다.
예수님께서 묶여서 채찍질당하시던 돌기둥을
옮겨온 공덕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증거한 6m 높이의 12사도의 석상.
몽둥이를 들고 있는 작은 야고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찔러보는 토마스.
X십자가의 안드레아
지팡이를 들고 있는 순례자의 주보 성인 큰 야고보.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의 주인공.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
톱을 들고 있는 시몬
타대오
로마 시민이어서 십자가형을 면하고
참수형으로 순교한 바오로
독수리로 상징되는 복음사가 요한
가죽벗김을 당하였다는 바르톨로메오
세리였던 복음사가 마태오
필립보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의 열성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1209년. 이노첸시오 3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수도회 인가를 거절하고 내쫓았으나
쓰러져가는 라테라노 성전을 한 손으로 받치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꿈을 꾸고
그가 교회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불러들여 수도회 인가를 해주었다고 한다.
길 건너 라테라노 성전을 바라보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상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인노첸시아 3세 교황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받고
작은 형제회를 창립하였다.
1300년.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성년(희년)을 선포한다.
희년에만 열리는 문.
십자가 밑의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아기 예수님의 발이 닳아 반짝거린다.
희년의 문 안쪽.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성체를 모시는 경당.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식탁이 놓여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교황이 집전하시는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가
이곳에서 봉헌된다.
라테라노 성전 봉헌 축일은 11월 9일이다.
에제키엘 47,9-12
'성전 오른쪽에서 나오는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 카타콤베Catacombe
카타콤베는 로마성 밖 아피아가도 주변의 로마인들의 지하무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박해로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무덤으로 숨어 들어
집회를 하고 예배를 드리던 은신처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그곳에 묻히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머물던 곳. 그들의 위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곳.
60여곳의 카타콤베 중 11곳이 공개되어 있다. 우리가 간 곳은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된
<칼리스토 카타콤베>
로마 멸망 후 이교도들에 의해 훼손되어, 8C부터 시신을 옮겨 빈무덤이 되어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이교도들이 묻힌 곳은 '네크로 폴리스'라 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이 묻힌 곳은 부활을 기다리며 쉬는 곳이라 하여 '체메떼리움'이라고 부른다.
칼리스토 카타콤베 가는 길. 버스 안.
좁은 2차선 도로.
이 길이 아피아 가도?
카타콤베앞. 아름다운 숲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암호처럼 신앙을 표현했던 그림들.
가이드의 막대기가 가리키는 것은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의 첫글자들로
'이투스'라고 읽고 그것은 '물고기'를 뜻함으로써 물고기 그림으로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나타내었다.
들어가기 앞서 그곳에서 발견된 그림들,
그곳의 구조와 지내던 모습, 그곳에 무덤이 있었던 교황들과 순교자들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곳에서 발견된 벽화들.
카메라가 금지되어 촬영할 수 없어서 아쉽다.
4만5천평 규모라고 한다. 지하 20-30m깊이에 여러층으로 파여 있고,
그 어마어마한 미로와 같은 좁은 통로.
길을 잃으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벽 틈으로 하나씩 파여진 개인무덤, 방으로 꾸며진 가족무덤,
교황님 무덤 앞엔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까지 있다.
그러한 구조가 가능했던 것은
석회질로 맨손으로도 파낼 수 있고
습기를 흡수하면서 공기가 닿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돌처럼 굳어지는 특수한 토양때문이라고 한다.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충격에도 불구하고
올리브나무 숲길에 서서.
* 성 바오로 대성당
성 바오로 대성당은 313년 콘스탄니누스 대제가 바오로 사도의 무덤 위에 기념 대성당을 지은 것이다.
그 후 386년 현재의 대성당과 같은 규모로 확장. (다섯 군데의 통로와 80개의 기둥)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려 수난 중 1823년 대화재로 파괴되었던 것을, 교황 레오 12세가 복원하기 시작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축성하였다. 길이 130m, 폭 30m이다.
하느님께 최고의 것을 봉헌하고자 하는 신심의 발로일 것.
성 바오로 성당 내 소성당.
구조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미사전례 형식으로
사제가 신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미사를 집전하신다.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6m 높이의 부활 촛대.
돌 창문.
돌을 얇게 깎아 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현 265대 베네딕토16세 교황까지 역대 교황님 초상화가 걸려있다.
성물방에서 예쁜 묵주를 2유로에 샀다.
버스 안에서 자랑하는데
요안비안네 가이드, "내가 산 성물을 남에게 알리지 마라.
곧 후회할 것이다."
몇 시간 후 바로 후회했다. 그곳에선 1유로...
성 바오로 성당을 나와서
중국식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 성 베드로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가는 길.
로마 시내를 흐르는 테베레 강.
서울 시내를 흐르는 한강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지만
고색창연한 분위기.
아름드리 플라타나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은 로마 시내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바티칸 시국 안에 있으며
이교도들의 공동묘지였던 언덕 위에 베드로 무덤이 있던 자리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 바오로 성당과 함께
지었으나, 훼손되었던 것을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건립하기 시작, 1615년 교황 파울루스 5세 때 완성되었다.
TV나 컴퓨터가 아닌 바로 내 눈 앞에 성 베드로 성당이 서 있다.
우리는 돔까지 올라가지 않아 성당과 광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찍을 수가 없었다.
4열의 도리아식 기둥이 284개에 이르고
기둥 위에는 140명의 성인상이 있다.
그 뒤로 교황청이 보인다.
전통적으로 주일 12시에 저 발코니로 나오셔서 교황님께서 삼종기도를 하신다고.
광장 한가운데의 33m로 현존하는 최고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전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로마 원형경기장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는데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움으로써
이교도신들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 그림은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의 그림이다.
실제로 돔에 올라가 광장을 내려다 보면 천국의 열쇠 모양이라고도 하고,
성당을 중심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반원형의 회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베르니니 작품.
바티칸은 1506년부터 100여명의 스위스 수비대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복장을 하고 지키고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의 걸작.미켈란젤로의 '삐에타'
성모님의 젊은 모습은 원죄없으심을,
아들의 죽음을 안고 있음에도 슬픔의 없는 표정은 영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대리석으로 저렇게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무덤 앞 제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명에 의해 만든 베르니니 작품의
'발타키노'
베드로 무덤 위의 제대를 덮고 있는 것.
성 베드로 성당 지하에는 역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제단 아래 교황 우르바누스 8세의 무덤
중앙 돔
높이가 136m에 이르고 로마 시내에서는 이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고 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고 라틴어로 쓰여있다.
성령의 비둘기,그리고
베드로좌가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성당을 짓는데 필요한 비용마련을 위하여
면죄부를 팔기 시작하면서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종교분열이 초래되었다.
베드로 성당 안에는 많은 성인상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종교개혁은 수도회로부터 시작되었고,
교회의 기둥은 수도자임을 나타내는 각 수도회 창립자들이다.
청동으로 만든 성 베드로 상
발을 만지고 입을 맞추며 기도한다.
베드로의 발이 다 닳아있다.
시간에 쫓기고 다리도 아프고 늘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와서 바티칸 성벽을 따라가면
바티칸 박물관이 나온다.
*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솔방울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
정원에 마련된 안내판 앞에서 미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늘에 있는 안내판 앞에서 수신기를 받아들고 이어폰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습도가 없어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학교다닐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하버드 대학쯤은 갔을터..
요안비안네 가이드의 재미있는 설명으로 웃고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으나
스테파노의 저런 천진난만한 웃음은 보기 힘든 장면이다.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벽화에 대한 이야기와 배경들.
반드시 보아야하는 박물관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정원 한 가운데 있는 지구의는 저 멀리 보이는 성 베드로 성당 쿠폴라 위에 있는
조그맣게 보이는 구와 똑같은 크기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 베드로 성당의 규모를 가히 짐작케 한다.
나일강을 의인화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일강의 신'
팔각형의 안뜰.
숫자 8은 하느님께서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휴식을 취하시고,
새로 맞이하는 날로써,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고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티칸 박물관을 대표하는 '라오콘 군상'
그리스 신화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사제 라오콘이 그리스인이 보낸 목마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자,
신들이 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의 그의 아들들을 질식시켜 죽이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원형의 방.
로마시대 건축물인 판테온을 축소한 모형의 방이다.
빗물을 받는 큰 수조.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시선이 나를 따라다닌다.
지도 방. 화려한 그림으로 장식된 천정.
복도 창문을 통해서 본 교황청 정원.
성 베드로 대성당과 광장 전경 그림
벨베데레의 '토루소'
아테네인 아폴로니오스가 조각한 것. 인간의 신체.
미켈란젤로가 극찬하였으며 그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헬레나 성녀의 석관.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박물관 밖.
바티칸 박물관의 대표적인 시스티나 경당의 미켈란젤로 작품들은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어 있어
아쉬움이 남지만, 늘 눈에 익숙한 그림들이기는 하다.
시스티나 경당의 벽면 양쪽으로는 모세의 생애 그림 6장과
예수님의 생애 그림 6장이 그려져 있고,
천정에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 유명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교황 율리우스2세의 명령에 의해 미켈란젤로가 그렸고
천재적인 화가의 독특한 성격의 일화들도 재미있다.
그리고 시스티나 경당은 또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열쇠로 잠그다)가 행해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1059년부터 추기경단이 교황을 선출하기 시작,
12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 선종이후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고 3년간의 공석으로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가두어 콘클라베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교황은 추기경 투표자 2/3+1의 득표로 선출된다.
로마의 성지순례는 버스 이동시간이 짧고
한정된 시간 안에 매우 바쁘게
규모가 큰 성당들과 카타콤베, 박물관을 종일 걸어다니니 매우 힘들다.
그런데도 81세의 가브리엘 할아버지와 78세의 로사 할머니는
쳐지지도 않으시면서 잘 따라다니신다.
축복받으신 건강이시다.
박물관을 나와서 또 한참을 걸어서 성물 파는 곳에 갔다.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져서 또 빠른 시간 내에
십자가며 묵주, 메달, 열쇠고리 등 선물할 것들을 샀다.
그랬더니 모든 피로가 풀리면서 행복해졌다.
성물을 사서 다소 피로를 회복하고 또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향한다.
* 성모 마리아 대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雪地殿 성당, Santa Maria Maggiore, 눈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최초로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다.
로마의 '요한'이라는 사람의 꿈에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나를 위한 성당을 세우라.
그 장소는 눈이 하얗게 내린 곳이니 즉시 알 것이다.'
과연 그곳에 가보니 8월에 눈이 쌓여 있었다.
그리하여 352년. 교황 리베리우스는 그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천주 성자의 모후로 공경하기 시작한 것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천주의 모친'으로 선포한 이후이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432년. 교황 식스토 3세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공경심으로
원래의 성당을 더 크고 아름답게 지어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바로크 양식의 성당 정면.
14세기.교황 그레고리오 11세때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세웠다.
좌우로 20개의 이오니아식 열주는 로마시대의 신전 기둥이라고 한다.
발다키노에 가려진 중앙 제대의 apsis(중앙 제단의 움푹하게 들어간 벽면)엔
예수님으로부터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시는 '동정녀의 대관식'그림이 그려져 있다.
천정은 순금장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과
성 베드로 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베르니니의 무덤이 있다.
중앙에 오벨리스크가 있는 성당의 정면같은 뒷면.
이로써 로마의 4대 성전을 둘러보았다.
웅장함과 화려함과 정교함이라는 단어로 일축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인간의 위대한 힘을 보면서
오히려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된다.
나는 무엇으로..
내가 봉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집트에선 시나이산을 다녀오던 날,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을 다니던 날,
로마에서는 이날..완전 초죽음이 되었다.
돌아가기 전 한식당에서 동태찌개 백반을 맛있게 먹고 전날의 호텔로 다시 들어갔다.
로마에서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일부분이지만
내 나라의 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절로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아름다운 로마를 단 하루에 성지만을 둘러보고 돌아가기엔 너무나 아쉬워 야간관광을 건의해보았지만
물론 성지순례의 맥을 끊는 부분도 있지만
유럽은 타코메타?라는 제한된 기사 운행 시간이 있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텔로 들어가자마자 완전 다운되었다.
그런데 작은 베드로 가족은 그날 저녁 택시타고 나가서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 콜롯세움등을 관광하는 체력을 과시하였다.
쉐라톤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