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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베론성지

                                        배론성지

6월15일. 성당에서 예비자 성지순례가 있었다.
인솔책임자인 남편을 따라 가서 함께 미사를  드리고 푸짐한 반찬의 맛난 점심을 먹고는
그들과 무관하게 홀로 자유롭게 다녔다.
그 옛날엔 첩첩산중일 것같은 그곳에 계곡을 끼고 매우 넓고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다.

위치: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2리 644-1

천주교 원주교구에서는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거의 무너졌던 황사영 백서의 산실인 토굴과 6.25 전쟁으로 소실된 성 요셉 신학교를 복원하였다.
또한 최양업 신부의 순교자적이고 사목자다운 삶을 본받고자 시복.시성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이 배론은 교회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기에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로 관리되고 있다.

                                  황사영 백서의 산실인 '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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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1년에 시작된 신유박해를 피하여 서울에 살던 황사영 알렉시오는 이곳에 몸을 숨겼다.
 그해 2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신자인 김귀동의 집 뒤에 있는 옹기굴
 을 가장한 토굴 속에 은신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신유박해로 말미암아 거의 무너지다시피
 한 교회의 재건을 위해 '백서'를 썼는데, 백서는 가로 62cm, 세로 38cm 가량 되는 명주천  위에 122행, 13384자로 된 것이다. 황사영은 백서에 박해의 진행 과정과 주문모 신부를 비롯하여 30여 명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순교 사적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어서 순교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교회가 재건되고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경 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5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백서가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지기에 앞서 그가 그해 9월 29일 체포되고 백서 또한 압수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황사영은 물론 그를 숨겨 주었던 김귀동을 비롯하여 많은 신자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백서에는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와 신자들의 삶, 특히 30여 명의 신자들의 순교적인 삶과 사실들이 담겨 있으며, 또한 당시의 정치적이고 사회 사상적인 내용과 정치적인
목적하에 시작된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이 밝혀져 있다. 현재 백서의 원본은 교황청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성 요셉 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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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에 설정된 조선 교구
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담당하게 되었다.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은 1836년 이 땅에 들어오자마자 신학생들을 뽑아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신학 교육을 받게 하였다. 그런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이 땅에 신학교의 필료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교구장 직무 대행인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메스트부르(Maistre) 신부에 의해서 신학교가 세워졌다. 메스트르 신부는 1843년부터 배론에 와 살던 장주기(요셉)의 초가집을 빌려 1855년 초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의 책임자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푸르티에(Pourthie) 신부와 프티니콜라(Petitnicolas) 신부였다. 신학교의 이름은 1861년 10월에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해서 '성 요셉 신학교'로 명명되었다. 이들은 위생 환경의 불량, 열악한 교육 시설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교리서의 번역과 '라틴어-한국어-한문' 사전을 만들기도 하였고, 배론 교우촌을 우리 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신앙 공동체로 만들기도 하였다. 당시 신학생들은 설립 직후 6명, 1859년에 7명, 1863년에는 10명이었는데, 성직자 양성의 열매가 맺을 무렵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1866년)로 말미암아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고,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는 3월11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3명의 신학생들은 서울에서, 장주기는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3월30일 순교하였다. 특히 신학교의 집주인이었던 순교자 장주기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최양업 신부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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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의 묘까지 오르는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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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 조각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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